취재 및 구술 정리 _ 구민기자 박미진, 박정숙

저는 1972년 21살의 나이에 베트남에 파병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저의 형님이 베트남에 파병을 다녀오신 터라 걱정하실 부모님께는 차마 말씀조차 드리지 못했습니다. 파병 전 한 달간의 훈련을 받으러 부산으로 가는 길에 어쩌면 다시 뵙지 못할 부모님 생각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베트남에서 저는 무전병으로 보통 일주일 혹은 15일씩 진행된 야간 매복작전에 투입되어 보조배터리 2개와 무전기 등으로 다른 병력보다 10kg 이상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물론 죽음의 공포였지만 평균 34~36도에 육박한 극심한 무더위와 베트남의 모기, 해충, 거미, 독사만으로도 고된 시간들이었고 베트남 우기 때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경험을 함께했던 많은 전우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참 그립습니다.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유골함으로 고국에 돌아간 전우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저와 함께 베트남 파병을 갔던 고향 친구도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귀국한 전우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심한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해 신장투석을 하고 2세까지 피부암 등의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훈병원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현충일 3~4일 전 무렵이면 현충원에 꽃을 가져다 놓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분들 중엔 꽃을 놓아줄 가족이 계시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감사한 마음을 담아 꽃을 놓아주는 학생들의 그 예쁜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애국의 마음은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국민 중 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의 헌신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줄 때 그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